창경
Chang Gyeong
창경
Chang Gyeong
시간에 따라 프레임이 지나간다. 영화는 어떤 장면을, 혹은 어떤 감정을, 그게 아니라면 존재하지 않았던 어떤 것을 우리의 시선에 내보이는데, 화면은 사실 존재를 요구하지 않고, 앞으로 나아가지도 않는다. 필름은 상흔이다. 지나가고도 사라지지만은 않는 것, 그래서 더더욱 응시하게 되는 침묵과 현존의 자리를 포스터 한 켠에 내어주고 싶었다. 포스터 전시 참여 제안을 받았다. 정부의 영화제 예산 삭감에 저항하는 의미로 모든 포스터를 흑백으로 제작한다는 이야기와 함께. 하지만 정부가 바뀌고 다시 예산이 복원될 것이라는 소식과 함께 저항에 대한 요청도 철회되었다. 되돌려진 예산은 정말로 무언가를 되돌리는 걸까? 그 즐거운 회복이 우리에게 건네는 화해의 제안을, 나는 기꺼이 받아들여야 할까? 최악의 것이어서 거부의 힘을 믿어야만 하는 것이 아니라, 너무나도 행복한 해결책이어서 화해를 거부하는 것. 나는 흑백의 밀도로, 저항의 상흔을 남기며 제안을 거부한다.
정동규 / 텍스트 프레스
삶과 예술의 간격을 좁히는 생활 출판사 ‘텍스트 프레스’를 운영하며 글을 쓰고 책을 만든다. 전주국제영화제와 부산국제단편영화제에서도 일했으며, 현재는 책을 다루는 일을 두루두루 맡으면서 예술로서의 삶과 미학으로서의 디자인을 탐구하는 데에 시간을 할애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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